도전하지 않는 젊음은 낭비일 뿐이다 보스턴 연수

포스트 타이틀

“도전하지 않는 젊음은 낭비일 뿐이다”.

2017년 봄 어느덧 개원한지 5년차에 접어들어 이래저래 병원 규모도 확장하고 개원3년차때의 우울감도 잊고 쳇바퀴 도는 집-병원-집 생활과 갖은 모임으로 체중은 점점 불어가던 찰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미국 이라는 새로운 도전과제가 생긴 것입니다. 의사가 되고 난 후 수 차례 외국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고, 대부분은 학회나 의료봉사 활동으로 갔던 것이 전부였는데 이제 1년간 현지인?으로 살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몇가지 산적한 문제가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나홀로 개원한 의원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양도, 폐업, 페이닥터 고용등등 수많은 고민과 해결책을 찾아 수개월을 알아보고 하였으나 마땅한 대안이 없었고, 미대사관에 비자 신청 인터뷰때 까지도 모든 것 이 결정된바 없었습니다. 보건소, 심평원에 수차례 전화 및 방문, 선후배 의사에게 제가 미국에 가있는 동안 의원을 맡아줄 수 없겠냐는 등, 인맥을 동원하여 연락해보았지만 모두 힘들겠다는 답변만 수개월째, 드디어 1년간 한 분이 페이닥터를 해주겠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대장정의 서막을 열수 있었습니다.

갖은 준비할 것이 많고,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타국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부대껴야 할 일이 걱정이었지만 그보다 더 한 것은 내가 만들어놓은 직장이 잘 유지될까 하는 걱정이 가장 컸습니다. 제 의원은 입원실, 수술실도 있어 24시간 환자에 신경을 써줘야 하는 의사가 대진의로 있어야 하는데 보건소에 문의한 결과 대진의는 180일 이상 쓸수 없어, 원장이 외국 나갈 경우 반드시 180일 안에는 귀국해서 진료를 봐야 하며, 그러지 않을 경우 진료에 대해 환수조치나 폐업 조치등이 가능하다는 의료법의 내용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잠시 귀국해서 진료 기간은 상관없다는 답변을 받고서야 모든 결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제가 연수지로 선택한 곳은 보스턴, 뉴욕입니다. 이 결정에는 와이프가 연수지로 택한 보스턴의 Dana-Faber Cancer institute가 우선시 되었지만 저도 미국대학의 정형외과 및 로컬 병의원의 치료, 수술, 처치, 재활치료등을 경험해보고 싶어 수많은 이메일과 학연, 지연을 통해 연락하였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습니다(나중에 연수한 병원들 교수님 만나보니 이런 이메일, 연락이 수없이 오기 때문에 특별한 안면이 없는 이상 오라고 하기 힘들다는 답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함께 정형외과 레지던트를 했던 윗년차 선배 Dr. Cho가 Newyork Bronx에 있는 Albert Einstein university의 Montefiore medical center에 spine chief로 있어 전화 이메일로 연락하여 와도 좋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역시 많은 노력을 하지 않고, 어려운 현실을 간과하며 쉽게 결정을 했다면 아무것도 못하고 올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2017년 8월 한달간 페이닥터를 옆에 놓고 한달 내내 나의 모든 노하우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전수하고 8월 24일 인천공항에서 디트로이트 경유 보스턴으로 가는 약 20여시간의 비행을 캐리어 15개(저희는 아이가 셋이라 이민가방포함)를 붙이고서야 한숨 돌리고 비행기에 탑승할수 있었습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자본주의 사회를 대표하는 나라 답게 모든게 money 위주로 돌아갑니다. 물론 연수, 취업, 학교 등에서 서로를 믿는 추천서가 가장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습니다. 누가 해주지 않고 본인이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 현재 겉으로는 노력하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방법을 많이 쓰는 한국사회와 가장 다른 점이라 생각됩니다. 서로를 믿고, 믿게 만들고,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 열심히 하고 이게 이 나라의 살아가는 방식인 거 같습니다. 믿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연구원들, 학생들, 교수들을 만나보면서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뭐든지 꼼꼼히 2-3번 double check하고, 다시 확인하고, 거짓없이 다시 보고, 또 보고 서로 확인하고, 같이 연구하는 사람들끼리 공유하고, 코멘트하고, 철저히 연구에 동참한 교수나 직원들은 모두 한마음이 되서 논문이나 연구에 매진하여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공저자의 역할을 확실하게 하고 그래야 논문에 자기 이름이 들어가고 이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만들고, 이에 대해 모두 당연시 하는 풍토가 선진국의 연구, 의료의 풍토인걸로 보입니다. 누구 하나 무임승차는 꿈도 꿀 수 없고,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제가 결정한 보스턴의 도시는 뉴튼(newton)이라고 보스턴 중심가에서 약 5킬로 정도 떨어진 garden city로 약 1달여간의 미국 생활 적응(아파트, 가구조립, 아이들학교(셋다 다른학교(middle school, elementary school, preschool), 등등의 의식주생활)을 마치고 나니 화창한 보스턴의 맑고 깨끗한 날씨와 주변의 나무, 공원에 눈길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미국 역사를 대표하는 도시인 만큼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기념하는 freedom trail, common park, garden, 수많은 역사 건물등과 푸르덴셜 타워로 대표되는 신식건물이 찰스강을 중심으로 잘 어루러져 있고, 강 북쪽의 대학(하버드, MIT로 대표) 강 남쪽의 병원지역이 두 갈래로 잘 갈려있다.

 

보스턴지역에는 의대가 4군데 있는데 모두가 알고 있는 Harvard medical school(하버드대와는 떨어져 병원이 밀집한 지역인 longwood지역에 있습니다), boston university medical school, Umass(메사추세츠 주립대학)medical school, Tuft medial school로 대부분 하버드 의대만 알고 있는데 이렇게 4군데가 있고, 수많은 병원이 각 각 대학의 부속병원 역할을 해서 staff 들 명함을 보면 여러 대학의 staff로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Longwood medical street라는 명칭으로 도로가 각 병원들 사이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동네는 안팎으로 수술가운과 의사가운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고, 밤낮으로 몇분에 한번씩 굉음을 내는 앰브런스를 쉽게 볼수 있는 곳입니다.

 

<boston childen’s hospital 영상의학과 김돈수 교수님(미국에서 알게됨), brigham and womens hospital 류마티스내과 김서영 교수(대학교 동기), 모두 하버드의대 부속병원 입니다. >

6개월만의 귀국

보스턴은 한국보다 좀더 북쪽에 위치하여 겨울이 길고 눈도 많이 오고(실제로 2018년 4월 15일에도 눈이 왔다), 추울 때는 영하 20도이하로 내려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람들도 영국풍의 옷을 많이 입고 다니며(대부분 우중충한 검정색 계열), 비나 눈이 내려도 우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습니다. 한겨울에도 해만 뜨면 반팔 반바지에 거리를 뛰어 다니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뛰고 운동하는걸 좋아하고 각 마을마다 야구장 축구장, 넓은 잔디밭 및 학교의 운동트랙, 호수등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 쉽게 운동할수 있고, 맑은 공기를 마실수 있어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미세먼지등 공기가 나쁠때면 보스턴의 날씨나 공기가 매우 그립습니다. (참고로 필자는 2019년 2월 27일에 귀국하여 거의 한달간 미세먼지로 인한 기관지통증과 기침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보스턴에서 가을, 겨울을 보내고 1월 말 약속했던 6개월의 시간이 되어 단 하루의 일정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보스턴에서 오후 7시반에 뉴욕으로 출발하여, 뉴욕에서 다음달 새벽 12시 50분 발 한국행으로 인천공항에 새벽 5시 도착 바로 병원으로 와서 직원만남, 오전 진료, 오후 수술의 일정을 마치고, 어머니댁에서 저녁먹고 자는둥 마는둥 하고 다음날 새벽에 공항에 가서 오전 10시 뉴욕경유 보스턴행으로 실제로 1박 4일 일정이니 대통령보다 힘든 일정을 소화해 내었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의 귀국이라 설레였었고, 잠시나마 알던 사람들을 만나 힘들지만 기쁨의 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Newyork Bronx의 montefiore hospital의 Dr. Cho와 resident, 우측은 수술복 자판기>

나의 본격적인 연수 목적지로 결정된 뉴욕 북쪽의 bronx지역의 Montefiore hospital은 가을에 이어 추운 겨울에 다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척추정형외과에서 주로 scoliosis, spinal stenosis등 간단하지 않는 수술만 집도 하고 있는 Dr Cho와의 레지던트 인연으로 외래, 수술실, 연구실등 여러 곳을 다녀볼 수 있게 된 흔치 않은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다녀본 다른 병원들에서는 shadow doctor라고 해서 임상 연수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것은 정말 이름대로 shadowing이다. 과거 인턴, 학생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 사람들의 동선을 피해서 보고 있어야 하는 힘든 과정입니다. 수술준비, 수술등이 한국과 다르게 매우 천천히 확실하게 모든 것을 일회용으로 막 쏟아 붓는 수술과정을 보면서 자본주의의 힘을 느끼고, 환자의 감염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돗보였습니다. 물론 비용은 쓰는 만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겠지만…

손님은 왕이다 라는 표현은 미국생활에 딱 맞는 것입니다. 하지만 의사도 왕이다 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 것 같이 환자가 의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치료 및 검사에 대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환자가 일차 주치의의 의뢰에 의해 대학병원 진료를 받는 것에 대해 고마워하는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미국은 개인보험에서 갈수 있는 병원을 정해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문제가 생기는 환자들의 눈빛은 달랐지만 그래도 나를 진료해주는 의사는 자기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 거 같고, 외래진료 후에는 항상 악수하던지 스킨쉽을 하며 다음을 기약하였습니다. 아 우리도 좀더 환자와 눈을 마주치고,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푸념을 해봅니다.

대게 수술환자는 몇일 내로 퇴원하며, drain을 하고 있어도 자가 치료하며 퇴원하고, 간단한 상처 소독 및 약은 CVS에서 사먹도록 설명합니다. 이후 치료는 local에서 담당하며, 재활은 우리나라의 도수치료처럼 주1회 안팎 통원가료하고, 이후는 근처 healthcare center나 자가 운동요법으로 cover하는 시스템입니다.

 

<Newyork주의 Binghamton의 Lowes our lady hospital Dr. McClure, Dr. Kim, Dr. Ellison>,

두번째로 방문한 Newyork주의 Binghamton의 Lowes our lady hospital의 정형외과 총괄을 맡고 계신 Dr. Kyungin Kim 고수님은 한국나이로 75세 이신데도 여전히 수술과 외래진료를 젊은 의사처럼 하고 계십니다. 이 병원은 개방형 병원으로서 office는 차로 약 3분거리에 떨어져 있고, 수술실 입원실만 main병원 건물에서 이용하는 시스템입니다. 수술실 병실이용 금액만 병원에 지불하고 수술에 관계된 fee등은 교수님이 받아서 정형외과 팀을 꾸리고 직원월급도 주는 시스템입니다. 연세가 있어 아직 차트는 dictation(마이크로 녹음하는 시스템) 이지만 단어 하나 틀리지 않게 또박또박 발음하시는 모습에서 50여년의 미국의사 내공이 느껴졌습니다. 교수님의 추천으로 다른 의사의 로봇수술, 인공관절 수술, 외상 수술 등 많은 것을 경험해 볼 수 있었고, 물리치료실도 방문해서 선수 및 환자 치료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이날은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쉽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의 외야수 무키베츠가 슈퍼캐취를 해서 팀이 이겼는데 그 영상보고 내가 너무 좋아서 이야기 했더니 쏴한 반응이 와서 왜그럴까 생각해 봤더니 여긴 뉴욕주라 뉴욕 양키스 팬들이라 보스턴 정말 싫어합니다-2018년 보스턴이 월드시리즈 우승했는데 우승퍼레이드에서도 yankee go home을 보스턴 팬들이 연신 외처댔습니다)                              <물리치료실에서 직원들과 함께>

평창 동계 패러림픽

한창 보스턴 생활을 하던 내게 대학동기가 연락이 왔습니다. 한국에서 동계올림픽을 하는데 의료진으로 와서 참여해 줄 수 있냐는 연락이었습니다. 내 아들 딸이 7세부터 아이스하키(현재 골리로 딸은 초등부 대명킬러웨이즈, 아들은 중등부 수원유나이티드이글스팀에 소속되어 있음.)와 스키레이싱(곤지암스키스쿨)을 하였고, 미국에 와서도 아들은 newengland wolverines팀에 딸은 newengland pride 팀에 골리로 활동하였으며, 스키레이싱도 Wachusett mountain의 ski racing팀에서 계속 대회를 나가서 한국에서 했던 활동을 계속한 터라 겨울 스포츠에 관심을 많이 같고 있던 터에, 한국의 의사들이 진료로 시간을 오래 낼 수 없고, 올림픽은 대학에서 관심이 많아 의료진을 파견이 쉬웠는데 패럴림픽은 아무래도 관심이 떨어져 3주간의 기간동 안 의료진을 관리하고 운영해야 하는 의사인력이 필요한데 내가 현직에 없으니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부탁이 왔습니다. 나는 미국에 있고, 한국에 가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 비용을 들여야 해서 힘든 결정이었지만 부모님 을 미국으로 오시게 하고 난 후 3주간의 한국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3월에 열릴 패럴림픽 참여를 위해 12월에 워싱턴에서 열린 team doctor course인 advanced team physician course를 수료하고, 3월초 귀국하여 역시 하루 진료 및 수술 후 당일로 바로 평창행 ktx에 몸을 실었습니다. 추운 겨울 눈이 많이 쌓인 보스턴을 떠나 평창에 도착하니 역시 눈이 많이 와서 산더미 같이 쌓인 눈길을 걸어 운영본부에 도착하니 이미 올림픽도 끝나고 해서 휑하니 남겨진 건물들 사이에 운영본부를 만날 수 있었고, 옷가지등 장비를 챙겨 내가 있을 바이애슬론 및 크로스컨트리 스키 venue로 향했습니다. 알펜시아 골프장을 스키장으로 만든 하얀 설원의 배경에 감탄한 것도 잠시 공사장 컨테이너 박스처럼 생긴 진료실과 도핑실, 선수실, 거대한 텐트로 만들어진 식당등을 보며 앞으로 험난한 일정이 기다리겠구나 하는 노파심과 걱정이 앞서게 되었습니다.

시차 적응할 틈도 없이 알펜시아와 숙소가 있는 삼양목장은 자차나 택시로만 이동하여야 하고 민주적인 근로조건 탓에 식사는 일하는 동안만 주기 때문에 일 2식이 지급되고 나머지는 개인돈으로 해결해야 하는 악조건과 올림픽과 대조적으로 적은사무인력과 이런 일을 거의 해보지 않은 의료진과 익숙하지 않은 응급구조사, 간호사, 스키장이나 골프장에서 주로 일했던 캐디출신, 스키패트롤출신등 자원자로 의료팀이 꾸려지게 되었다. 준비기간 1주, 경기기간 2주로 이루어진 스케쥴과 각종 약품 정리, 선수들 구간확인 및 각 포인트별 의료진 배치등 스키패트롤 대장과 함께 매일 포인트 잡고 연습하고 필요한 물건들 챙기는 것으로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바이애슬론과 크로스 컨트리 스키는 동계마라톤 같은 종목으로 단거리 장거리 코스가 있으며 바이애슬론은 스키에 사격이 동반되어 있는 종목으로 일반사람도 힘든 경기를 좌식(하지 절단이나 마비환자)과 입식(시각장애, 또는 의지를 이용한 환자)로 나뉘어 경기를 하게 됩니다. 의료진은 경기시 구간이 길기 때문에 의사, 응급구조사, 스키패트롤이 한팀이 되어 잘 보이지 않는 중간중간의 포인트에서 혹시 모를 사고등에 대비해 서있어야 하는 추위와 시간싸움에 힘들게 있어야 하는 고된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환자가 발생시 요청이 있지 않는 한 경기장에 들어가서도 안되고 심각한 응급상황만 진입할 수 있으며, 서로 밀접한 보고를 통해 상부에 보고해야 하는 이중고가 있는 의료진의 역할이 경기를 사고 없이 매끄럽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야했습니다. 다행이 큰 문제 없이 경기를 치렀지만 때로는 서로의 의견이 안맞고, 올림픽때 고생한 것으로 패럴림픽에서 풀던 직원들 때문에 우여곡절이 많았던, 힘들지만 좋은 경험이 되었고, 2020 도쿄올림픽,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도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많은 staff들과 인사 및 명함도 교환하였지만, 개원의로서 참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남는 기간이었습니다(역시나 시간을 낼수 없는 개원의의 현실 때문에). 패기와 열정 넘치는 장애스포츠 인들이 넘사벽의 근육량으로 해내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으며, 그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며 폐막식을 뒤로 하고 바로 다음날 새벽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원래 1년연수를 계획하고 두 병원을 다녔는데 또 다른 새로운 기회가 왔습니다. Brown university의 medial school의 immunology department에 계시는 prof. Lee 가 내가 대학교 다닐 때 유전학 교수님으로 계셨는데 연구실 초정이 오고, Umass 대학의 영상의학과 교수님도 학교 선배님이시고, 여기에 관계된 골다공증 실험실, 주변의 local medical center등 참관할 수 있는 병원과 대학이 계속 연결이 된 것입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시 미국에서 긴 시간들을 보낼 수 없어 한국에 입국하여 페이닥터를 교체하고 직원들을 다독인 후 다시 미국에 와서 6개월의 연장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DS2019서류로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의 연장은 연수하는 병원에서 연장신청해주고, 담당교수와 상의후 직원 통해서 어렵지 않게 연장신청이 되어 6개월간의 연장 기간의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었고, 이전에 첫 대진의는 2018년 3월에 갑작스럽게 개원하겠다며 그만두어 바뀐 학교 후배 대진의가 8월이후로도 6개월더 맡아 주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국생활 2편에 돌입하게 됩니다. To be continued…

 

아이엠정형외과 최성욱 원장

 

포스트 컨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