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보의 집 봉사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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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보의 집 봉사를 다녀와서

준이비인후과 김준희원장

 

레지던트 시절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필리핀 의료 봉사를 다녀 온 적이 있었다. 봉사에 대한 생각보다는 잠시 병원의 일상을 떠나게 된다는 해방감으로 출발한 봉사였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왔던 여정이었다. 이후에도 기회가 되면 진료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개업의로서 일정 기간 병원을 비우고 떠나는 진료 봉사는 역시 부담이 되어 늘 마음 한구석에 숙제를 가지고 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성남시 의사회 임원 선생님께서 인보의 집을 소개해주셔서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냥 다른 선생님들 하시는 거 옆에서 도와드린다는 생각만 가지고 처음 인보의 집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다행히 중학생인 된 큰 딸아이도 같이 가보겠다고 하여 딸아이와의 추억도 만들 겸 같이 가보기로 하였다.

일요일 아침 10시, 딸아이와 함께 인보의 집 정문을 열고 들어가자 원장 수녀님께서 반갑게 맞이해주셨고, 3-4분의 의사회 임원 선생님들이 먼저 와서 이야기를 나누며 준비하고 계셨다. 그날 우리의 미션은 어르신들의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식사하시도록 도와드리는 일이였다. 다들 능숙하게 앞치마를 두르시고, 주방에서 각자 맡으신 요리를 척척 만들기 시작하셨다. 미역국, 동태전, 계란말이, 시금치 무침, 불고기, 도토리묵 무침 등이 그럴싸하게 완성되어가는 걸 보고 있자니 입이 떡 벌어졌다. 딸아이는 그날 시금치 다듬고 손질하는 걸 배워서 시금치 무침이 완성되는데 일조(?)했고, 나는 동태 해동하고 튀김옷을 입혀서 프라이팬까지 전달하는 일을 하며 동태전이 완성되는데 큰(?) 도움을 드렸다. 그렇게 분주하게 식사 준비를 마칠 때 쯤 어르신들 한분, 한분 요양 보호사분들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타고 식당으로 들어오셨다. 보조기를 이용하시는 3-4분 어르신들 이외에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휠체어 없이는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이었고 숟가락을 들기에도 힘겨워 보일 정도로 쇠약해 보이는 분들도 있었다. 몇몇 어르신들은 치아가 안 좋아서 불고기도 믹서기로 갈아서 드려야했다. 어르신들이 식사를 마치고 나서, 다시 주방에서의 설거지와 청소를 끝으로 그날의 미션이 마무리되었다.

일반적으로 의사들의 봉사 활동을 생각하면 진료 봉사를 맨 처음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편견을 극복해 보고자하는 생각에서 성남시 의사회에서 시작된 것이 인보의 집 배식봉사라고 한다. 매달 첫 번째 일요일에 진행되는 봉사에 지금은 의사회 임원 분들이 조를 짜서 돌아가며 봉사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엔 음식이 너무 짜게 되거나 싱겁게 되어 어르신들의 불평이 있기도 했지만, 매번 같은 메뉴를 준비하다보니 여러 번 참여하신 선생님들은 점점 실력이 늘어 지금의 맛있는 식사 준비가 가능해졌다고 한다. 나도 첫 참여 이후 여러 번 봉사에 참여하면서 모양 좋고 맛있어 보이는 계란말이 만드는 노하우를 조금씩 터득해가고 있는 중이다.

 

매일 진료실에서의 바쁜 일상에 치어, 마음은 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봉사에 대한 생각들, 의사로서 진료 봉사를 하고 싶지만 마땅히 시간 내기가 쉽지 않고 기회가 많지 않아 미뤄 놓았던 봉사에 대한 생각들을, 한 달에 한번 인보의 집 배식봉사에 참여하여 정성껏 만든 음식을 어르신들께 대접하는 거창하고 큰일은 아니지만 보람찬 봉사로 실행해 보는 것을 다른 성남시 의사회 회원 분들께도 권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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